PEOPLE ㅣ강태웅 감독
애니메이션 불모지, 인형으로 틔운 새싹
최초 장편 퍼펫 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 연출
1967년, 제5회 청룡영화제는 국내 최초로 스톱모션 방식으로 제작된 퍼펫 장편 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에게 비(非)극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여했다.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폭발적인 인기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또 한편의 수작을 놓치지 않았던 것. 선악의 강한 대비와 해학, 웃음 그리고 인형의 연출 등 <흥부와 놀부>는 45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시대는 이를 알아보지 못했고, 강태웅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 활동은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두 편에 그치고 말았다. 뒤늦게나마 작품들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지만 강태웅 감독이 인터뷰 첫머리에 청룡영화상 수상을 언급함에는 이러한 섭섭함이 담겨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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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가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1949년 일본으로 건너가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영화에 대한 열정이 크셨던 것 같습니다.
A: 영화 산업이 활성화 돼 있을 때는 아니었지만 관심이 많았죠. 작은 아버지가 일본 법관 시험을 통과하고 고려대학교 교수를 지낸 분인데 항상 나를 법정에 데리고 다녔어요. 하지만 내가 영화만 생각하고 있으니 화를 내기도 했어요.
영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우리 나라에는 대학 학과가 없었고 일본에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일본 유학을 갔어요. 일본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에 합격하고 난 후, 아버지가 궁금해 하는 데도 학교 이름만 말해주고 학과는 1년 동안 말하지 않고 버텼죠. 결국 아버지가 알게 됐지만 이미 다니고 있으니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었고, 작은 아버지가 요새는 영화판도 달라지고 있다고 설득한 덕에 허락을 했습니다.
1949년 7월에 일본에 간 후, 그 이듬해 3월에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났어요. 원래 졸업하자마자 한국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독을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집에서도 오지 말라고 해서 졸업 후 일본에서 1-2년 정도 조감독 생활을 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실제의 다른 점도 배우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감독들이 많지 않은데다 영화도 많이 제작되는 상황이 아니어서 나처럼 일을 배우려는 이들이 너무 많았어요. 시험도 보고 여기 저기 찾아다녔지만 일을 배울 감독을 만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극영화가 아니라 기록영화를 만드는 영화사에 써드(세번째 조수)로 들어갔어요. 퍼스트, 세컨드, 써드니까 제일 막내로 들어간 거지 뭐.
Q: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일본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형 애니메이션(퍼펫 애니메이션)의 선구자이자 거장인 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에게 퍼펫 애니메이션을 배우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A: 이 작품, 저 작품이 일이 있을 때마다 했는데, 한번은 덴츠사에서 일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높은 직위의 사람들과 인사도 하게 되고 안면을 익히게 되더라고요. 하루는 복도에서 인사를 했더니 한국 사람인지 묻더니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친구가 일본에서 유일하게 인형 영화를 하는 사람인데, 새로운 작품에 조감독이 필요해서 추천을 부탁했다며 나보고 해보라는 거에요. 그 친구가 바로 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가 하고 싶다고 인형 영화는 해본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고국으로 돌아가서 많은 극영화 감독들과 경쟁하는 것보다 여기서 배워서 한국에서 유일한 인형 영화 감독이 되는 게 낫지 않냐며 생각을 더 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틀린 말이 아니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마침 스튜디오가 내가 사는 곳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더라고요. 그 넓은 동경에서 말이죠.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케부쿠로 역 근처의 덴츠의 영화 현상소 내에 있는 스튜디오로 출근을 시작했습니다.모치나가 다타히토 감독은 처음부터 조감독을 시키는 게 아니라 먼저 인형을 만들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 즈음 걸려 만들었더니 좀 조잡하긴 한데 이정도면 됐다하면서 원숭이 5마리가 등장하는 작품의 조감독을 맡게 했어요.
Q: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인형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공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A: 모치나가 감독은 말이 별로 없었어요. 내게도 작업에 대해 묻거나 얘기 하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하라면서 알아서 배우라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런 감독이 어디 있나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한테 원하는 게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르는 것을 물으면 다음날 얘기는 해주겠지만 보통은 직접 해보고 생각하라고 하더라고요.
또 이 분이 머리가 아주 좋았어요. 인형 애니메이션은 조금씩 움직여가면서 한 프레임 씩 촬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갔을 당시, 원숭이 형제 5마리가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인형 모두를 조금씩 움직여야 하니까 복잡하고 헷갈릴 법 한데도 감독님이 스크립터에게 확인하는 일은 웬만해선 없었어요. 말없이 손짓을 주면 카메라로 촬영을 했죠. 한 동작에 한번이나 두 번, 아니면 다섯 번까지도 찍었어요. 걷는 장면을 예로 들어 한 프레임 당 보폭을 크게 해서 찍으면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임이 거칠게 보이는 식이죠.
그렇게 1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요. 모치나가 감독이 혼자서 할 수 있겠냐고 묻길래 할 수 있다기보다 한국에서는 혼자 해야 하니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서 제작해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배웠다며 작품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Q: 그러나 인형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실사영화로 데뷔하셨습니다. 첫번째 작품 <백의 천사와 꼽추(1959)>에서는 주연까지 맡았고 <금지된 입술(1966)> 등을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한국에 돌아와서 인형 애니메이션을 설명해도 뭔지 모르는 거에요. 당시 인형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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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기자(mercury@animatoon.co.kr)
PEOPLE l 황선길 교수
애니메이션의 이론적 토대는 이 손으로
MBC 첫 TV 장편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한 길 걷기
애니메이션의 ‘애’자도 몰랐던 PD는 TV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냈고, 애니메이션 대학원 과정 설립,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교장 등 ‘최초’ 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전들을 거침없이 해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제작부터 후학양성까지 이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됐다. 올해로 73세가 됐지만, 황선길 교수의 도전은 아직도 멈출 줄 모른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그가 개척해주기를 기다리는 분야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Q: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A: 제작년 홍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직을 그만두고, 강의했던 자료들을 정리해서 책을 출판하고 있어요. 《영상문학ㆍ영상언어》와 기획한 학술 전집 4권 중 《애니메이션 기획, 연출》,《애니메이션 100년》이 출간됐고, 이번 달(3월) 말에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이해》, 5월 중에 《애니메이션과 사회》가 나올 예정이에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이해》는 영상 시대에 맞게 책도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타이포그래피(서체의 그래픽적인 표현)까지 제가 직접 시도했습니다.
Q: 교직에 몸담기 전, MBC PD로 약 25년을 근무하면서 1988년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을 시작으로 많은 창작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A: MBC가 라디오 방송만 하던 시절인 1964년 입사했고, 1969년 TV 방송국 개국 일원이었어요. 라디오 드라마부터 코미디, 교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연출을 했어요. 그런데 1987년, 1년 후에 열리는 올림픽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우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작품을 만들라는 정부의 권유사항이 내려왔어요. 이전까지 방송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제작비 때문이었어요. 미국, 일본 작품을 싼값에 사다가 보여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구태여 많은 돈을 들여 제작할 필요있냐는 거였죠. 이런 상황에서 제작을 하려니 애니메이션에 대해 아는 이가 있어야지요.
마침 나는 히로시마애니메이션페스티벌로 출장이 결정된 후 소식을 들었어요. 애니메이션이 뭔지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국장에게 출장 후에 내가 해보면 안 되겠냐고 물었어요. 당연히 만들라고 했죠. 그리고 도착한 히로시마에서 애니메이션의 표현영역의 다양성, 그 매력을 알게 된 거에요. 이런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죠.
우선 <철인 007>, <구국의 태양 성웅 이순신> 등을 만든 고등학교 동창인 한성학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이 친구를 총감독으로 대원, 세영, 신원 세 곳의 제작사에 제작을 의뢰했어요. 그랬더니 그림이 서로 다르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을 모르니 한 실수였어요. 첫 작업을 해보니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 관련 대학도 없으니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이론적인 바탕이 없었습니다. 극장용 장편과 TV용이 화면, 스토리 구성이 다른 것을 몰랐어요. 이런 것 때문에 많은 충돌이 있었죠.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감독들은 TV 작품에 대해 배우고, 나는 그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배웠지요.
Q: 말씀하신대로 장편 애니메이션과 TV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나 화면 구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A: 시나리오 구성만 해도 아직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기승전결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니에요. 처음부터 위기, 절정, 위기, 절정의 나열식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현대인은 템포가 빠르고 강한 걸 원하기 때문이죠. 특히 TV 프로그램의 경우 초반 5분이 중요해요. 이 시간 내에 시청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후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소용이 없어요.
화면 구성도 타이트한 컷과 루즈한 컷이 있는데, 타이트한 컷은 피사체 위주로, 주위 사물보다는 인물 위주로 카메라가 잡는 경우로 TV에서는 클로즈업을 많이 쓰죠. 그래서 TV 작품의 연기자는 표정연기가 중요합니다. 영화는 주변의 설명적인 요소, 루즈한 컷트를 많이 사용하는 식이죠. 카메라 워킹도 영화는 단계적으로 피사체에 접근하는 방식이지만, TV는 일단 피사체 접근하고 분산시키는 방법을 써요.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이런 원칙을 모르니 갈등이 많을 수 밖에요.
한번은 동양동화와 <심청전>을 제작할 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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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기자(mercury@animatoon.co.kr)
PEOPLE l 이한빛 감독
애니메이션이란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도시의 공허함을 독특한 색채와 영상으로 밝히다
도시는 공허하다. 도시의 밤은 온갖 소음과 현란한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모든 정보는 공개돼 있지만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정보가 넘쳐나면 날수록 인간의 마음은 점점 얇아지고 가난해진다. 독특한 그림과 연출력으로 도시의 공허함을 표현해낸 이한빛 감독의 <세레나데>는 2010년 인디애니페스트 새벽비행 부문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현란한 도시를 쓸쓸하게 바라보는 감성은 이한빛 감독을 움직이게 하는 기본명제이며, 도시의 아이러니를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jpg) “내가 이 도시에 살게 된 이유는 어떤 전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다. 언제부턴가 살게 된 건 내 의지가 아니다. 난 여기 살고 있는데 내 삶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방황을 많이 하며 작업했다.”
어릴 때부터 항상 그림을 그려왔고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4년까지 이한빛 감독의 애니메이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결코 많지 않은 나이지만 <세레나데>의 모든 작업을 홀로 해온 것만으로도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는 이제 ‘쟁이’에 가깝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그려 왔던 그림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원없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지만 한편으론 인문학 등 관련된 배경지식을 많이 배우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고. 여태껏 갈고 닦아온 기술적인 부분은 현업인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깊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늘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차지하지만 ‘내 이야기를 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터트리는 것’이다. 때문에 더 깊이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문적인 배경이나 지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담은 노래, 세레나데
<세레나데>는 남자가 한 여자를 찾아 도시로 날아가는 첫 장면으로 시작된다. 현란하고 수많은 정보들로 넘쳐나는 도시에 정착한 남자는 여자를 찾기 위한 목적을 잃은 채 점점 도시의 이방인이 되어 살아간다.
 “제목은 사랑내용을 담은 듯 보이지만 내용은 사랑이야기와 상관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분명히 한 남자가 여자를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왠지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꼈다. 어떤 의미를 함축시키기 보다는 그 감정이 사랑을 담은 노래, 세레나데임을 말하고 싶었다.”
졸업 작품인 <세레나데>는 1년 동안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완성도를 위해 1년을 더 공들여 완성됐다. 1년동안 프리 프로덕션을 2년째에는 포스트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프리 작업을 할 때는 사람들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월하게 작업했지만 나머지 1년은 홀로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완성한 작품을 처음엔 미처 볼 엄두를 내지 않았지만 한 달 뒤 작품을 봤을 때, 그녀는 마침내 하나를 만들어내고 완성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이한빛 감독이 좋아하는 장면 중의 하나는...
(이하 생략)
이 연 기자(ani@animatoon.co.kr)
자세한 내용은 애니메이툰 90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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