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 두 장르의 결합, 그 시너지의 힘
‘라이언’ ‘노예들’ 등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찰
<두 개의 문>,<말하는 건축가>, <워낭소리> 등 최근 다큐멘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진정성을 담고 있는 영상의 진가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와 양극단에 있는 장르를 꼽자면 애니메이션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장르간의 결합,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제작이 사실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는 실제 인물들과 사건에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을 더함으로써 사실성을 띄면서도 진실 너머의 감정이나 의식들을 이미지화시켜 실사와 허구의 간극을 메운다. 역사 속 한 개인의 이야기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표현기법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사실이 주는 충격을 완화시켜주기도 한다. 때로는 극단적인 두 장르의 대비로 인해 실사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서로 이질적인 두 장르의 공존은 오히려 시너지를 가져온다.
애니메이툰은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들에 주목하고 각각의 요소들이 어떻게 녹아들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됐는지 살펴본다.
| 개인의 시각으로 쓴 역사, ‘할머니는 왕실 세탁부’ |
(1).jpg) 토릴 코브 감독의 할머니는 손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줬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살았던 그녀는 왕의 셔츠를 다림질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왕실 세탁부(My Grandmother Ironed The King's Shirts)>는 역사적 사실과 할머니의 기억, 여기에 약간의 유머와 위트를 결합시킨 유쾌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연출의도와 화자의 기억에 따라 같은 사실이라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할머니는 왕실 세탁부>는 1905년 노르웨이가 스웨덴에서 독립해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8세의 차남 칼 왕자가 노르웨이의 국왕 하콘 7세로 즉위하고,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는 등의 역사적 사실과 셔츠를 다리는 일을 했던 할머니 개인의 삶과의 접점을 그려내고 있다.
노르웨이의 왕이 되기 위해 전세계의 무직 상태의 왕족들이 줄을 서 자신의 면접 차례를 기다렸으며, 하콘 7세가 스키는 잘 타지 못했으며, 왕과 왕비가 한 번도 셔츠를 다려본 적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중요하게 치부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 할머니의 역사에서는 중요한 사실이다.
그녀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독일군을 괴롭히는 모험담은 사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며 웃음을 이끌어낸다. 카툰처럼 단순하고 코믹한 그림체와 감독 자신이 아닌 제3의 인물을 화자로 내세움으로써 이 작품은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기보다 주관적인 관점의 한 개인의 일화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가 여러 개인의 이야기로 이뤄진 직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jpg) 1960년대 촉망받던 천재 애니메이터로 <워킹(Walking)>이란 단편으로 1969년 오스카 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한 ‘라이언 라킨(Ryan Rakin).’ 하지만 현재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예전의 재능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채 몬트리올 시내에서 푼돈을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다.
<라이언>은 크리스 랜드레스 감독과 라이언 라킨의 실제 대화로 구성된다. 둘의 첫 만남에서부터 <워킹>을 만들 당시, 여자 친구에 대한 회상, 감독 자신의 이야기와 현재까지, 그들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크리스 랜드레스는 자신의 애니메이션이 사이코 리얼리즘(Psycho realism)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라이언>에는 초현실주의와 다큐멘터리가 공존한다. 캐릭터들은 실제 모습에서는 볼 수 없는 마음의 고통과 상처들을 얼굴의 손실이나, 생채기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분노나 고통 등의 감정변화나 감정적으로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얼굴에 있는 촉수나 머리카락의 움직임을 사용하는 등의 애니메이션적 표현법으로 강렬하게 표현한다.
한 예로 머리카락이 손처럼 튀어나와 얼굴을 감싸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감독이 술을 끊고 다시 창작활동에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라이언이 감정적으로 폭발한 적이 있었는데 작품은 당시를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감독은 또한 작품에도 직접 등장하며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라이언의 이야기를 녹음하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눈 대화 상대자였기 때문이다.
3D로 만들어진 <라이언>은 주요 동작을 그리고 사이사이의 연결동작을 그리는 포즈 투 포즈(Pose to Pose) 대신 한 프레임씩 순차적으로 만들어가는 ‘스트레이트 어헤드(Straight Ahead)’기법을 선택했다. 이 기법으로 표현된 라이언은 움직임이 중복되면서 사실적인 자연스러움으로 말로는 전하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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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이연 기자
자세한 내용은 애니메이툰 98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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