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슈퍼배드
“저 하늘의 달을 따 슈퍼 악당 되리”
픽사와 드림웍스 사이, 유니버설이 띄운 승부수
.jpg) ‘선’을 미덕으로 삼아 온 어린이, 가족 영화의 주인공 자리는 이제까지 착한 영웅의 독차지였다. 물론 ‘슈렉’ 같은 괴물이 주인공인 경우도 있었지만 그 역시 ‘못생긴’ 영웅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드래곤 길들이기>와 <토이 스토리3>가 착한 주인공들을 앞세워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 유명 스튜디오의 내공 강한 대작들이 연타를 친 후에 선보이는 유니버설 픽처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슈퍼배드>의 주인공은 악당이다. 어떻게 하면 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그야말로 ‘슈퍼’ 악당!
악당이 아빠가 되기까지
음침하게 푹 꺼진 눈과 표독스럽게 뾰족한 코가 흡사 ‘펭귄맨’을 닮은 그루. 울고 있는 어린이에게 풍선 강아지를 만들어주는 그를 보면서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했던 걸 반성하려던 찰나, 날카로운 바늘이 매몰차게 풍선을 터뜨린다. 행복해하던 아이의 얼굴 위로 처참히 붙어버린 풍선 잔해, 믿음을 줬다 뺏는 것만으로도 이 짧은 장면은 충분히 악랄하다. 이외에 주차하면서 다른 차 아작 내기, 앞에 줄 선 사람들 얼음총으로 쏘기 등은 자잘한 장난 수준이다. 슈퍼 악당이 되기 위한 그의 주요 업무는 세계적인 랜드마크 훔치기. 그런데 새로운 악당 벡터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훔치면서 그루는 2인자가 되게 생겼다. 이제 ‘달’처럼 범우주적인 물건(?)을 훔쳐 줘야 다시 1인자로 등극할 판이다.
사람들은 영화 속 악인이 철저하게 파괴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결말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슈퍼배드>는 그루를 최대한 나쁘게 그려놓은 후 그 안에서 착한 마음을 끌어내는 방법을 택했다. 악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악’ 자체를 어린이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악인은 날 때부터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에게 그들도 그저 꿈을 꾸던 착한 어린이었고 다시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루에게서 따뜻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역할은 알토란 같이 귀여운 세 명의 소녀들이 맡았다. 악독한 원장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살며 쿠키를 팔아야 하는 소녀들은 그루에게 입양된다. 물론 달을 훔치는데 꼭 필요한 벡터의 축소 광선을 훔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이지, 아빠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슈퍼악당다운 차갑고 악랄한 기개를 유지하던 그루도 도저히 당할 길이 없어 보이는 소녀들의 필살 귀여움에 점점 무장해제 되어간다. 관객들은 악당이 평범한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악당이 무너지는 것과 비슷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흉측하고 괴팍한 캐릭터를 묘사하던 그루의 뾰족한 코가 어느새 막내딸이 좋아하는 유니콘의 뿔을 닮아있다는 것도 눈치 챌 수 있다.
결국 악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어도 권선징악의 구조 자체는 변함이 없다. 악당 그루는 납치된 세 딸을 구해내기 위해 더 나쁜 악당 벡터와 싸운다. 비록 큰 틀이 전복되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악행을 일삼던 인물이 다른 이를 구하는 감정변화는 영웅의 역할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영웅이 아닌 딸을 위한 아빠의 당연한 행동이라는 현실적인 변화폭으로 악역의 개과천선이라는 흔한 무리수를 비켜났다.
익살을 미덕으로 삼는 캐릭터들
그루를 비롯해 <슈퍼배드>의 모든 캐릭터들은 착한 척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최고 악당이 될까 궁리하며 사는 등장인물들이니 어린이 영화라지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하다못해 그루가 키우는 개조차 애완견이라기보다 주인을 물어뜯는 식인견(?)에 가깝다. 악당 서열을 다투는 그루와 벡터 사이에 치열한 공방은 기상천외한 무기를 총동원한 싸움의 끝을 보여준다. 하지만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설정들은 오히려 <슈퍼배드>에서 가장 익살스럽게 그려졌다. 한 예로 영화 <오스틴 파워>의 주인공을 닮아 생김만으로도 익살맞은 벡터가 그루에게 미사일을 쏘는 모습은 싸운다기보다 흥겹게 기타를 치는 것처럼 보인다. 악역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 명의 소녀 역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약자지만 순종하거나 희생하지 않는다. 대신 말썽이든 애교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그야말로 <슈퍼배드>의 모든 캐릭터들은 어린이 영화답지 않게 선행이 아니라 익살과 장난을 미덕으로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캐릭터들을 다 합쳐도 <슈퍼배드>의 진정한 주인공인 노란 ‘미니언’ 군단의 매력을 넘어설 수 없다. 굴곡 없이 짧고 노란 몸에 물안경을 쓰고 멜빵바지를 입은 미니언들은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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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기자(ani@animatoon.co.kr)
자세한 내용은 애니메이툰 87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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