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l 모치나가 타다히토
두 나라, 두 이름을 가진 애니메이터
중국ㆍ일본 인형애니메이션의 제작과 교류의 효시
지난 8월 23일, 일본 인형애니메이션의 거장 가와모토 기하치로 감독이 별세했다. 30년이 걸려 제작한 그의 작품 <사자의 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다. 헌데 그 이전에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일본 인형애니메이션의 대가가 있다. 가와모토 기하치로의 스승이자 중국과 일본의 첫 인형애니메이션을 만든 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이다.
중국 상하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주요 창시자 중 한 명인 그는 중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양 쪽의 출발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인형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를 만든 강태웅 감독도 그의 제자라니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있다. 얼마 전, 그의 딸 모치나가 노리코씨가 일본 731부대의 실상을 비롯한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는 ‘악마의 포식’ 콘서트 차 한국을 방문한 덕에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쟁 선전물로 애니메이션 시작
1919년에 도쿄에서 태어난 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이 중국과 연을 맺은 것은 만주의 철도회사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을 때부터다. 일본과 중국을 오갔지만 중국에서 대부분의 유년기를 보낸 그는 그들의 문화를 배우며 자랐다. 이것이 모치나가가 자국의 식민치하에 있던 중국을 제 고향처럼 여기고 평생 교류하며 살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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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본 애니메이션은 10살이 되던 해 도쿄의 한 극장에서 관람했던 <미키 마우스>. 노리코씨는 “당시 영화를 보러가는 학생은 불량스럽다는 딱지가 붙었는데, 아버지가 처음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정학 처분을 당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중학교 때 본 또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리 심포니(Silly Symphony)>는 그의 진로를 결정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총천연색으로 그려진 연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도쿄 미술대학교에 들어가 애니메이션 기술을 공부했다. 1938년,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만드는 방법>으로 교수들을 놀라게 한 모치나가는 전무후무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 영화회사 GES(Geijutsu Eigasha)의 애니메이션 부서에서 일하게 된 그는 배경을 맡아 그렸다. 당시 일본은 한창 전쟁 중이라 애니메이터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 군대를 위한 선전물을 만들도록 강요받았는데, 모치나가도 영화를 만들면서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었다. 1943년, 제국 해군의 임명으로 GES의 세오 미츠요 감독이 진주만 공격을 소재로 연출한 <바다 독수리 모모타로(Momotaro, the Sea Eagle)>에서 모치나가는 배경과 촬영을 맡았다. 일본 어린이들은 영웅 모모타로가 원숭이, 토끼 함대를 이끌고 악마의 섬을 공격하는 이야기에 열광했고 영화는 히트를 쳤다.
1944년, 모치나가가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후쿠짱의 잠수함(Fuku Chan's Submarine)> 역시 선전물이었다. 후쿠짱은 당시 일본에서 인기 있었던 신문만화 캐릭터로 애니메이션에서는 적의 화물선을 공격하는 잠수함의 이야기를 그렸다. 애국심을 고양시키는 작품이었지만 어린이들은 잠수함의 조리사들이 요리하는 장면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식량부족 문제가 심각했는데 잠수함 내에 음식이 풍족하게 공급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터웨이와 일궈낸 상해 스튜디오
.jpg) 종전을 앞둔 1945년 6월, 일본을 떠난 모치나가는 만주영화협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만주영화협회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스튜디오로 일본인의 통제 하에 2천여 명의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이 괴뢰정권이었던 만주국을 홍보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 스태프들의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의자가 뻔히 있는데도 내주지 않아 서서 일하는 중국인을 본 모치나가는 그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노리코씨는 “그 일 이후로 중국인 제자도 많이 생겼고, 스튜디오 내에서 중국인과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만주영화협회가 해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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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기자(ani@animatoon.co.kr)
자세한 내용은 애니메이툰 87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EOPLE ㅣ 배영랑 감독
딱지본 만화가에서 만화영화 감독까지
‘홍길동’ 원화로 시작한 애니메이션 인생 30년
배영랑 감독은 새해가 되면 지인들에게 직접 그림을 그린 연하장을 돌린다. 노신사가 그린 것이라 상상할 수 없는 그의 그림은 여전히 훌륭한 필력을 자랑하고, 카투니스트다운 익살도 죽지 않았다. 열댓 살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애니메이션에 소질을 발견한 이후 그는 불과 10년 전까지도 애니메이션 현장에 있었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9월에 열리는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출품할 만화가 배영랑의 그림을 손수 가져와 보여줬다. 그림 그리는 재주와 영화에의 욕망을 동시에 담을 수 있었던 평생의 천직에서 지금은 물러났지만 배영랑 감독의 손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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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만화는 언제부터 그리셨나요?
A.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에 부산으로 건너와 지냈고, 중학교를 졸업했을 무렵부터 만화를 그렸어요. 당시 부산에 ‘세계문화사’라는 큰 출판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본 만화 《소년 케냐》를 카피해서 한국말을 넣고 《밀림의 왕자 레오》라는 책으로 출판을 했습니다.
마침 그 출판사 사장 아들이 나하고 같은 중학교에 다녔어요. 그 친구가 “너 그림 잘 그리니까 카피 한 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림도 그리고 청소도 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복제만화 《밀림의 왕자 레오》를 담당했던 팀장이 만화가 서봉재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들어갈 때 그만 두셨고요.
그 후에는 백두산문고라는 곳에서 ‘딱지본 만화’를 그렸어요. 그 당시 책을 출판하려면 필름을 써서 동판에 인쇄해야 했는데 필름이 비싸니까 출판사에서 동판에 직접 그리게 하고 돈을 더 얹어줬지요. 계산 없이 바로 그려야 되는데 그걸 못하면 일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Q. 신동헌 선생님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A. 내가 부산에 살 때 신동헌 선생님도 그곳에 계셨지만 그때는 못 만났어요. 나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전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때 영화에 미쳐 있어서 혹시 영화사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 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하숙비도 안 되고 먹고 살 길도 없어서 무작정 신동헌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그림을 하나 주면서 “한 번 그려와 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림을 그려갔더니 “내 밑에 있을 필요 없고 출판사 소개시켜 줄 테니 직접 그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돈이 안 될 거라며 20만 환도 쥐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꽤 큰돈이었지요.
그리고 1964년에 만화가 박기당 선생님이 신촌에 오성문고를 설립했습니다. 출판사 전속에서 벗어나 작가가 주체가 돼 출판을 하는 혁명을 일으킨 곳이었지요. 출판사를 거치지 않으니까 작가에게 돌아가는 이익금이 더 많았어요. 신동헌씨는 물론이고 만화 그리던 분들이 오성문고로 모였습니다. 나도 그곳에서 60페이지짜리 만화를 그렸고요.
Q. 그 인연으로 신동헌 선생님의 애니메이션 <홍길동(1967)> 작업에도 참여하게 되신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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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동헌 선생님이 홍제동 근처에 사무실을 내고 만화가 몇 명이 그곳에서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가 세기상사와 <홍길동>을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지요.
3개월 정도 작업한 테스트 필름을 봤는데 움직임도 엉터리고 형편이 없었어요. 고민하던 신동헌 선생님이 나보고 만화영화 원화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거였지만 막상 해보니까 나는 오히려 만화보다 애니메이션 쪽이 맞았어요. 아까 내가 영화에 미쳐있었다고 했는데 애니메이션도 영화니까.
신동헌 선생님이 기본적인 레이아웃을 그려준 것을 가지고 나는 원화와 동화를 했어요. 애니메이션의 동작은 물리적인 이치가 맞아야 해요. 예를 들면 넘어졌는데 일어설 때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짚고, 허리를 펴고, 다리를 당겨서 무릎에 손을 짚고 일어나는 순서가 있지요. 그걸 맞추는 사람이 없어서 움직임이 엉성했던 거예요. 내가 동작을 집어넣고 박수를 받았던 게 그 물리적 이치가 맞았기 때문입니다.
<홍길동>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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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기자(ani@animatoon.co.kr)
자세한 내용은 애니메이툰 87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EOPLE ㅣ 정도빈 감독
최초 단편 애니메이션 ‘개미와 베짱이’ 주역
셀 280매로 4개월 만에 5분 길이 컬러 작품 완성해
한국 애니메이션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대부분은 신동헌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1967)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단편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정도빈, 박영일, 한성학 감독이 1961년에 만든 5분 길이의 <개미와 베짱이>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성장에 큰 초석을 마련했지만 정작 작품의 주역인 정도빈 감독(81)은 애니메이션에서 손을 뗀지 오래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의지만으로 지독히도 열악한 당시의 제작환경을 견뎌왔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최초의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명예 외에는 없다. 거동이 불편한 몸이지만 눈을 빛내며 당시를 회상하는 정도빈 감독을 보며 그와 같은 많은 이들의 공로로 국산 애니메이션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Q: 어릴 적부터 그림이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A: 평양이 고향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해서 일본군을 피해 만주에서 살았지. 한 10살, 11살 정도였는데 이미 그때부터 펜화를 그렸지. 크레파스 같은 건 꿈도 못 꿨어. 그래도 일본 애들이 내 그림을 종이, 크레파스로 바꾸자고 했지. 소년 신문에서 1등을 하기도 했어. 일본군이 사람을 총으로 쏘는 그림이었는데, 어머니한테 자랑했더니 사람 죽이는 걸 그리려면 절대로 펜을 잡지 말라고 화를 내셨어. 그래서 다신 안 그리겠다고 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별 거 아닐지 모르지만, 나름 균형이 잡힌 그림이었다.
만화는 일본으로 유학 간 형님이 방학 때 사다준 싸구려 만화책이 처음이었다. 애니메이션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처음 접했다. 학교에서 영화를 상영한다고 해서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갔다. 일본군에 대한 선전물이었는데 그 중에 3분 길이의 애니메이션이 있더라.
Q: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전에는 어떤 일에 종사하셨나요?
A: 이북에서 공부를 하다가 전란이 일어나서 남으로 밀려 왔다. 사는 게 우선이지 공부는 다음이었다. 그래도 재간이 있고, 자꾸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벽 같은데 그리다가 혼나기도 했다. 전쟁 후 1954년 경에 홍익대 미대에 들어갔다. 종이 값이 비싼데 석고 데생만 하래더라. 학비만 내면 그림을 못 그려도 학년이 무조건 올라가는 거야. 난 돈이 없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3학년을 다니고 그만뒀다. 그리고 1957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Q: 교과서 그림을 그리다가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일하게 되셨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A: 교과서 그림을 그리느라 문교부를 들락거릴 때였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 내에 문교부가 있었어. 50m 떨어진 곳에 대한 뉴스,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었던 국립영화제작소가 있었지. 하루는 문교부에 갔다가 서문으로 나왔는데, 학교 동기인 박영일을 만났다.
그 친구가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이었는데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 농촌계몽영화를 만드는 거였는데, 모이를 쪼아 먹고, 알도 낳는 닭과 긴 닭장을 그리라는 거야. 젖소도 물론이고 동물들을 많이 그려야 했다. 교과서 그림 그리던 사람이 그걸 못 그리겠어? 전지에다 서너장 그림을 그려서 이었지. 그림이지만 카메라로 쫙 훑으니까 멋있지. 그때는 CF 애니메이션이든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없을 땐데 그런 식으로 시도를 한거야.
그 일을 계기로 국립영화제작소에 자주 들락거리게 됐다. 당시 그 곳에서는 대한뉴스 같은 종류의 홍보 영화 자막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일이 유리에다가 붓으로 써서 미국에 옥스베리(Oxberry)라는 유명한 영화촬영기 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촬영기를 사용해 찍었다.
위쪽에 카메라가 달려있어 페이드인, 아웃을 조작할 수 있었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그게 애니메이션 촬영기인 줄은 몰랐지. 일종의 글자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거라고 할 수 있지.
Q: 애니메이션 촬영기계인 줄도 모르고 사용하셨다고 했는데 최초의 애니메이션 <개미와 베짱이>(1961)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요?
A: 대한뉴스 자막 작업은 그림이 그려진 유리에 좌우에서 조명을 비추는데, 유리가 두꺼워서 글자의 그림자가 45도 각도로 생기게 되지. 당시만 해도 얇은 유리가 3mm 였고, 60년 대에 가서야 2mm가 나왔지. 그림자를 어떻게 하면 없앨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마침 미국의 영화 전문가가 방한해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르쳐줬다. 나야 참여하고 싶어도 영화하고 거리가 머니까 못했지. 그 사람이 셀을 500장을 가져왔다. 셀을 사용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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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기자(mercury@animato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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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ㅣ 나정인 감독
“하고 싶은 노래라면 엇박자라도 괜찮아”
양정훈 음악감독과 함께 만든 음악 애니메이션 ‘14비트’
누구라도 <14비트>를 보고나면 “빵꾸 난 양말이 미안하다”는 자조적이지만 이상하게 당찬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몇 번 따라 부르다 보면 진짜 발톱이라도 깎아야 될 것만 같다. 영화 속에 들어갈 노래 가사를 쓰는데 실제로 나정인 감독의 양말에 구멍이 나있었던 슬픈 사연은 이렇게 관객에게 잊히지 않는 중독성 강한 곡으로 승화됐다. 비트와 음악이 끊이지 않는 이 흥겨운 단편애니메이션만큼이나 유쾌한 나정인 감독을 만났다.
14살 소년의 꿈이 연주하는 비트
음악시험 전날, 진은 연주할 클래식 곡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밖에서는 웬 여자가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악보에 집중하려해도 몸은 이미 바깥의 박자를 쫓고 있다. 등굣길에도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음악시간에도 환영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 도저히 음악시험을 치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따로 놀던 진이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돼 비트에 몸을 맡긴 춤으로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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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비트, 8비트, 16비트는 알겠는데 14비트는 도대체 어떤 박자인가.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생소한 14비트는 엇박이다. 14살 사춘기 소년이 정박자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성장하며 연주하는 엇갈린 박자. 엉뚱하고 제멋대로로 들리지만 하고 싶은 노래를 하는 것만으로도 엇박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나정인 감독에게는 애니메이션이 그렇다. 공대 출신인 그가 “자신을 공학도라 부르기엔 다른 공학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할 정도로 학과 공부는 뒷전에 두고 선택한 ‘하고 싶은 일’은 애니메이션이었다. 공대를 졸업하고 2003년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습작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졸업 작품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하루가 저물어 가는 시간의 김씨 할아버지>를 만들었다. 기계공학으로 밥 벌어 먹기 어려울 것 같아 박차고 나온 그였지만, 독립애니메이션은 더더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음악 시험과 14비트 사이에서 갈등하는 진의 모습도 나정인 감독의 비슷한 고민에서 나왔으리라.
귀가 즐거운 애니메이션
<14비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음악을 맡은 공동 연출자 양정훈 감독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을 할 때 사운드 엔지니어로 만난 그는 현재 나정인 감독의 연인이며 동료다. 양 감독을 알기 전에 만든 전작에서도 욕을 랩으로 승화시켰던 나정인 감독 역시...
이하 생략
이현진 기자(ani@animato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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